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의 밤시장에 가면 유난히 시선을 끄는 철판이 있다. 얇게 늘린 반죽을 공중에 던지듯 펼치고, 속을 듬뿍 넣어 접어 굽는 모습. 바로 무르타박(Murtabak)이다.
무르타박은 단순한 길거리 음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중동, 인도, 동남아를 잇는 음식의 이동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르타박의 뿌리: ‘접다’라는 뜻에서 시작된 음식
‘무르타박(Murtabak)’이라는 이름은 아랍어 마르타바(murtabbaq, 즉 ‘접힌 것’이라는 뜻에서 왔다. 이름 그대로 얇은 반죽을 여러 번 접어 속을 감싸는 방식이 이 음식의 핵심이다.
기원은 예멘(Yemen)으로 알려져 있으며, 무역과 이주를 통해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퍼졌다. 특히 무슬림 상인들이 활발히 오가던 말레이 반도와 인도네시아에서 현지화되며 지금의 무르타박 형태가 완성됐다.
얇은 반죽, 진한 속
무르타박의 기본은 로티 차나이(roti canai)나 파라타(paratha)와 비슷한 밀가루 반죽이다. 하지만 속은 훨씬 묵직하다.
전통적인 속 재료는 다진 양고기 또는 소고기, 잘게 썬 양파, 달걀, 큐민, 고수씨, 카다몸 같은 향신료이고, 이 재료들을 반죽 위에 올려 네모나게 접어 철판에서 노릇하게 구워낸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과 향신료 향이 진하게 퍼진다.

지역마다 달라지는 무르타박의 얼굴
무르타박은 나라에 따라 꽤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 싱가포르·말레이시아
- 고기 무르타박이 가장 흔하며, 오이와 양파가 들어간 커리 소스와 함께 나온다.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 인도네시아
- 짭짤한 무르타박 말람(martabak telur) 외에, 초콜릿·치즈·연유를 얹은 **달콤한 무르타박(manis)**도 인기다. 사실상 디저트에 가깝다.
- 중동
- 예멘식 무르타박은 상대적으로 담백하며, 향신료 사용이 절제된 편이다.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문화와 식재료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무르타박의 매력이다.

길거리 음식 그 이상의 의미
무르타박은 단순한 ‘맛있는 팬케이크’가 아니다. 이 음식은 이주, 종교, 무역, 현지화라는 키워드를 모두 품고 있다. 한 장의 반죽이 여러 번 접히듯, 다양한 문화가 겹겹이 쌓여 완성된 음식이다. 밤시장 한 켠에서 무르타박을 한 입 베어 물 때, 우리는 사실 세계 음식의 이동 경로를 함께 맛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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