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식재료 (Ingredients Beyond Border)

태국 피쉬소스 남플라(Nam Pla) 제대로 알기

Slow Palate 2026. 5. 17. 18:04

동남아 여행 중 타이 요리를 먹을 때, 새콤하면서도 짭조름하고 묘하게 깊은 감칠맛에 감탄하곤 한다. 팟타이, 똠얌꿍, 쏨땀 등 대표적인 태국 요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이 맛의 핵심 비결은 바로 태국의 피시소스인 '남플라(Nam Pla)'이다. 우리나라의 액젓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태국 피시소스가 과연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지기에 이런 매력적인 풍미를 내는지 알아본다.

 

피시소스의 정체: 주재료와 제조 과정

'남플라'라는 이름은 태국어로 '남(물)'과 '플라(물고기)'가 합쳐진 말로, 직역하면 말 그대로 '생선 물'을 뜻한다. 이름처럼 주재료는 아주 단순하다.

태국 피시소스를 만들 때 가장 널리, 그리고 최고급으로 치는 생선은 주로 바다에서 잡히는 작은 멸치류 소형 어류이다.

  • 플라 가탁 (Pla Katak / ปลากะตัก): 태국 현지에서 피시소스를 만들 때 가장 최고로 꼽는 태국산 멸치의 일종이다. 크기가 작고 뼈가 부드러워 발효 과정에서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아주 잘 분해된다. 이 생선으로 만든 피시소스는 탁하지 않고 맑은 갈색 빛을 띠며, 풍미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 엔초비 (Anchovy): 우리에게도 익숙한 서양식 멸치인 엔초비류 역시 피시소스의 주재료로 대량 사용된다. 지방 함량이 적당하고 단백질이 풍부해, 장기 발효했을 때 폭발적인 감칠맛(우마미)을 내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이 신선한 생선과 소금을 커다란 항아리나 탱크에 켜켜이 쌓아두고,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2년 동안 자연 발효시킨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선의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데, 이때 폭발적인 감칠맛(우마미)이 만들어진다. 완전히 숙성된 후 위로 떠오르는 맑은 갈색 빛의 액체만을 걸러낸 것이 바로 순수한 피시소스이다.

태국 피시소스 제조사들이 크고 살이 많은 생선 대신 굳이 손가락만 한 작은 멸치류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는데, 생선이 작을수록 소금이 몸통 구석구석 빠르게 침투하여 부패를 막아준다. 또한 내장과 뼈가 통째로 쉽게 녹아내리며 발효되기 때문에 생선 전체의 영양분이 고스란히 액체로 녹아난다. 또 고등어나 정어리처럼 기름기가 너무 많은 생선을 쓰면 발효 과정에서 기름이 겉돌고 찌든 내가 날 수 있다. 반면 플라 가탁이나 엔초비 같은 소형 멸치류는 지방질이 적어 오랜 기간 달콤 짭조름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을 유지할 수 있다.

남플라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철칙 중 하나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소금에 절이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선도가 떨어지면 비린내가 심해지기 때문에, 신선한 생선과 천일염의 비율(보통 2:1에서 3:1)을 맞춰 곧바로 염장하는 것이 깨끗하고 맑은 감칠맛을 내는 비법이다.

 

한국 액젓과 태국 피시소스, 어떻게 다를까?

 

"우리나라 까나리액젓이나 멸치액젓이랑 똑같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발효 원리는 같지만, '짠맛의 강도'와 '비린 향의 유무'에서 차이가 난다

한국 액젓은 김치 숙성을 돕기 위해 깊고 묵직한 풍미와 콤콤한 향이 강한 반면, 태국 피시소스는 뒷맛이 비교적 깔끔하다. 덕분에 라임즙, 설탕, 고추 등과 섞였을 때 요리의 '산뜻한 감칠맛'을 살려주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태국 음식에서 피시소스가 중요한 이유

 

태국 요리는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의 균형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이때 짠맛과 감칠맛을 동시에 담당하는 핵심 조미료가 바로 피시소스이다. 

실제로 팟타이나 똠얌꿍은 물론이고 태국식 볶음밥, 각종 샐러드와 디핑 소스에도 피시소스가 감초처럼 들어간다. 태국 음식의 맛이 복잡하면서도 강한 중독성을 갖는 이유가 바로 이 발효 감칠맛 덕분이다. 한국 음식에서 간장이나 액젓이 뒤에서 묵묵히 맛을 받쳐주듯, 태국 요리에서는 피시소스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솔직히 말해 피시소스는 처음 향을 맡으면 꽤 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동남아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비린 냄새'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는 한국 사람들이 된장 냄새에는 익숙하지만 외국인들은 이를 강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피시소스는 막상 요리에 들어가 불과 열을 만나면 비린 향이 날아가고 풍미가 훨씬 부드러워진다. 오히려 음식 전체의 맛을 하나로 모아주며 "태국 요리다운" 이국적인 매력을 완성한다.

 

현지인들이 피시소스를 즐기는 방식과 브랜드

태국 사람들에게 피시소스는 간장만큼이나 일상적인 조미료이다. 식당 테이블 위에는 언제나 피시소스 병이 놓여 있다. 현지인들은 피시소스에 쥐똥고추를 썰어 넣거나 라임즙을 섞어 자신만의 만능 소스를 만든 뒤, 이를 볶음밥이나 요리 위에 살짝 얹어 곁들여 먹는다.

태국 마트에 가보면 피시소스 종류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 그중에서도 현지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브랜드는 Tiparos와 Squid Brand이며, 최근에는 프리미엄 제품으로 Megachef도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로컬 식당에서는 Squid 브랜드를 자주 볼 수 있다.

  • Squid Brand (스퀴드 브랜드): 짠맛이 직관적이고 깔끔하여 요리의 간을 맞추기 좋다.
  • Tiparos (티파로스): 태국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가성비가 높은 전통적인 브랜드이다.
  • Megachef (메가셰프): 염도가 비교적 낮고 풍미가 부드러워 초보자가 접근하기에 좋다.

브랜드마다 짠맛과 향의 강도가 조금씩 다르므로, 취향에 맞는 브랜드를 선택하면 집에서도 손쉽게 완성도 높은 동남아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나는 15년 전쯤에 미국에 살때는 그곳에서 구하기 쉽던 스퀴드브랜드를 주로 썼지만, 지금은 무조건 Tiparos를 쓴다. 가격도 싸고 맛도 아주 무난해서 집에 꼭 갖춰 놓는 필수 식재료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