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외국 현지 음식 이야기 (Local Plates)

싱가포르의 대표 소울푸드, 치킨라이스

Selenapark 2025. 8. 21. 08:07

 

한 그릇에 담긴 역사와 정체성

 

치킨라이스(Hainanese Chicken Rice)는 단순히 한 끼 식사를 넘어, 싱가포르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래는 중국 하이난섬에서 시작된 ‘원조’ 닭고기 밥에서 출발했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 중국 남부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입맛과 현지 재료를 더해 새로운 스타일로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싱가포르에서는 닭을 촉촉하게 삶아내는 방식과 간장·고추·생강 소스를 곁들이는 방식을 정착시켜, 이제는 전 세계 여행객들이 찾는 대표적인 로컬 음식이 되었죠. 싱가포르 사람들이 ‘이 도시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한 접시’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한 듯 특별한 밥의 비밀

 

치킨라이스의 진짜 매력은 의외로 ‘밥’에 숨어 있습니다.
보통 흰쌀밥이 아니라, 닭육수와 닭기름, 그리고 생강·마늘·판다잎을 넣어 지은 밥을 사용합니다. 한 숟가락 뜨면 기름지지 않으면서도 은근한 고소함과 향이 퍼져서, 밥만 먹어도 술술 넘어가죠. 싱가포르 사람들이 “닭고기는 곁들이고, 밥이 주인공이다”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입맛을 살려주는 소스 삼총사

 

치킨라이스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소스입니다. 보통 3가지 소스를 같이 갖춰놓고 먹어야 제대로 먹게 됩니다. 

 

1. 칠리 소스 : 치킨라이스 칠리소스, Chicken Rice Chili Sauce, 海南雞飯辣椒醬, 매콤·새콤한 맛, 치킨라이스의 대표 소스

2. 생강 소스: 치킨라이스 생강소스, Ginger Scallion Sauce, 姜蓉, 잘게 간 생강+파+기름, 은은하고 따뜻한 풍미

3. 간장 소스: 치킨라이스 간장소스, Dark Soy Sauce, 豉油, 진한 간장 풍미, 밥과 함께 먹으면 감칠맛 UP


이 세 가지 소스를 취향껏 섞어 먹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같은 치킨라이스라도 소스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요리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잘 모르겠으면 이렇게 세가지 소스를 다 얹어서 드셔보세요. 치킨라이스 맛있게 먹는 법
잘 모르겠으면 이렇게 세가지 소스를 다 얹어서 드셔보세요. 치킨라이스 맛있게 먹는 법

 

 

Chicken Rice at Chatterbox restaurant (photo: Chatterbox)
Chicken Rice at Chatterbox restaurant (photo: Chatterbox)

치킨라이스치고 너무 사악한 가격이지만 프레젠테이션만큼은 참 예쁜 만다린 갤러리의 채터박스 치킨라이스

 

 

길거리에서 미슐랭 스타까지

 

치킨라이스는 그야말로 스펙트럼이 넓은 음식입니다.
동네 호커센터에서 3~5 싱가포르 달러면 맛볼 수 있는 서민 음식이자, 동시에 미슐랭 가이드에도 이름을 올린 세계적인 메뉴이기도 합니다. 싱가포르의 유명 치킨라이스 가게 앞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서 있고, 심지어 관광객들은 ‘이 집 치킨라이스를 먹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고 할 정도죠. 한 그릇의 가격과 상관없이, 모두가 즐기고 사랑하는 진정한 로컬 소울푸드라는 점이 치킨라이스만의 매력입니다.

 

치킨라이스 200% 즐기는 방법

 

치킨라이스를 제대로 즐기려면 몇 가지 팁을 알아두면 좋습니다.

  1. 닭고기는 보통 스팀(백숙 스타일)로스트(구운 스타일)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만 고르기 아쉽다면 반반 메뉴를 시켜보세요.
  2. 가게에 따라서 가슴살이나 다리살 중 뭘 선택하고 싶은지 물어봅니다. 가슴살은 기름이 적고 뼈가 없는데 다른 닭가슴살 요리보다는 훨씬 부드럽습니다. 다리살은 당연히 부드럽고 야들야들하구요. 개인 취향입니다. (저는 로스트에 가슴살을 먹습니다) 
  3. 곁들여 나오는 맑은 닭육수 국물은 뻑뻑할때 같이 드셔야 합니다. 느끼함을 잡아주고, 밥과 고기의 맛을 더 부드럽게 이어줍니다. 그치만 가게에 따라 국물이 너무 MSG진한 곳도 있으니 드셔보시고 아니다 싶으면 꼭 안드셔도 됩니다.
  4. 치킨라이스와 함께 나오는 오이 슬라이스도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입안을 상쾌하게 해주는 조연이죠.

중요한 건 주문양인데, 사실 치킨라이스 한 그릇을 시키면 치킨의 양이 많지 않습니다. (적어도 저에겐 항상 부족하더라구요) 그래서 '더블 치킨!!'을 시킵니다. 치킨 양을 더 주문하는 건데, 말이 더블치킨이지만, 가격을 두배 받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가게에서 1~2불 정도만 더 주면 더블치킨으로 꽤 만족스러운 양으로 주니 그렇게 시키면 괜찮을 거예요. 

 

더 잘먹는 사람들이라면 그냥 2인 기준으로 '반마리(half chicken)'을 시켜보세요. 반마리여도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으면서 양도 푸짐하고 여러 부위가 섞여 있어서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머리채 매달려있는 스팀드 치킨라이스 + 로스티드 치킨라이스 (photo: Straits Times)

 

 

한 접시로 만나는 싱가포르

싱가포르 사람들에게는 일상 속 친근한 한 끼인 것 같아요. 일상에서 외식을 많이 하는 싱가포리언들도 주말에 가족끼리 푸드코트에서 먹고 있는 장면에서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치킨라이스를 먹고 있습니다. 자극적인 소스를 넣지 않더라도, 밥 자체만으로 고소하고 풍미가 있어서 아이들이 편하게 많이 먹는 메뉴이고요.

처음 먹었을 때는 '이게 싱가포르 대표 음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큰 임팩트가 있는 음식이 아니니까요), 몇 번 먹다보면 정말 계속 생각나는 음식입니다. 외국인에게는 싱가포르 문화를 가장 쉽고 맛있게 경험할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치킨라이스는 단순한 요리를 넘어, 싱가포르라는 도시 그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치킨라이스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 한 그릇이 가진 상징성 때문일 것입니다.

 

 

싱가포르에서 꼭 가봐야 할 치킨라이스 맛집

치킨라이스는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지만, 현지인과 여행객 모두에게 특히 사랑받는 ‘성지’들이 있습니다.

1. Tian Tian Hainanese Chicken Rice (티안티안 치킨라이스)

맥스웰 호커센터의 전설 같은 가게. 고든 램지와 앤서니 부르댕같은 셰프들도 극찬한 곳입니다. 닭고기가 촉촉하고 밥이 진한 닭 향을 품고 있어, 줄을 서더라도 꼭 먹어볼 만한 곳이에요.

원래 원조집은 좀 멀어서 저는 요즘은 접근성이 훨씬 좋은 오차드 럭키플라자 6층 푸드코트에 있는 곳으로 갑니다. 본점처럼 일회용 그릇, 식기에 주지 않아서 더 좋아요.  

 

2. Wee Nam Kee (위남키)

현지 가족 단위 손님들에게 인기 있는 곳. 스팀 치킨뿐 아니라 로스트 치킨도 맛있고, 닭고기 외에도 다양한 싱가포르식 요리를 함께 즐길 수 있어 식사 자리로 좋습니다. 저도 자주 가는 곳입니다.

 

3. Loy Kee Best Chicken Rice (로이키 베스트 치킨라이스)

 

치킨라이스 전문점 중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로, 1953년부터 3대째로 운영된 전통의 맛집입니다. 치킨라이스 세트를 쟁반에 예쁘게 담아주는 게 특징이라 비주얼도 만족스럽습니다.

Loy Kee Best Chicken Rice
Loy Kee Best Chicken Rice

 

 

4. Hawker Chan (호커 찬)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으로 유명해진 가게입니다. 원래는 소이소스 치킨누들로 유명하지만, 치킨라이스도 많은 이들이 찾는 메뉴. (앞선 곳들의 전통적인 치킨라이스와는 아주 살짝 다르지만 여전히 맛있습니다) 합리적인 가격에 미슐랭 퀄리티를 맛볼 수 있는 곳이죠.

Hawker Chan Chicken Rice Singapore
photo: Hawker Chan Chicken Rice